최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1. 식량 부족. 지난 10년여 동안 북한은 자연재해 등으로 식량이 부족했습니다. 간신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국제 사회의 지원.
2. 김정일이 뇌졸중을 겪었을 수도 있다(그러나 그는 육체적으로 회복 중이어야 한다). 북한의 60주년 기념일인 9월 9일, 김정일의 부재는 당연한 신호이며, 이 행사는 원래 있었던 일이다. 평양에서 열린 열병식도 북한의 2인자인 김영남이 북한 민병대를 사열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취소됐다. 한국과 일본 모두 대북 정책·군사적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남측 소식통에 따르면 얼마 전 중국 의사 5명이 북한의 초청으로 김정일을 치료하기 위해 북한에 갔다.
3. 김정일은 건강이 좋지 않아 언제든지 아버지를 만나러 갈 수 있지만 아직 세 아들 중 누가 후계자가 될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 그렇지 않으면 그는 그럴 것입니다. 사후에는 필연적으로 권력 투쟁의 법정 드라마가 있습니다.
4.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6자회담에서 난관에 봉착한 것도 김정일의 건강이 좋지 않아 국정을 처리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 측이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타협보다는 양보를 했기 때문에 김정일의 최종 승인이 필요합니다.
다음 콘텐츠 출처: 인민일보 온라인
2007년 8월 26일 한국의 '조선일보', 한국의 연합뉴스, 싱가포르의 '연하자오바오', '일본투데이' ’ 등 언론에서는 오랫동안 해외에 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조용히 귀국해 조직지도부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이 어김없이 보도됐다. 노동당 부서.
장남은 조용히 중국으로 돌아갔다
도이치벨레 라디오는 김정남을 소개하면서 1971년 5월 10일 태어난 김정남을 " 전형적인 컴퓨터 팬'으로 러시아 유학을 잇달아 다녀왔다. 유럽 유학을 마치고 1999년 봄에 중국으로 돌아와 국가 업무 수행 방법을 심도 있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김정남은 15세부터 북한컴퓨터위원회 위원장으로 공식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1995년 24세였던 그는 김정일로부터 인민군 장군 계급을 받았다. 김정남은 1980년대 말 국가보위부 해외부장을 거쳐 1990년대 중반 노동당 중앙위원회 선전부 교관으로 임명됐다.
김정남은 2001년 5월 1일 여성 2명과 4세 남아 1명과 함께 도쿄공항에 제지됐다. 이후 1년 내내 해외에서 생활하며 방콕을 자주 오갔다. 태국과 유럽 여러 나라를 다녔지만 마카오에서는 정기적으로 여행을 다니지 못했다. 그는 그곳의 "Zhuwan Haoyuan" 빌라 마을에 연결된 두 개의 빌라를 임대했습니다. 동네에는 80채가 넘는 빌라가 있지만 김정남이 사는 집 창문에는 노란 해바라기 문양이 그려져 있어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올해 초 일본 도쿄방송 기자가 마카오 만다린 호텔에서 파란색 재킷과 분홍색 셔츠를 혼자 입은 김정남을 발견했다. 한 기자가 그에게 다가와 영어로 김정남이냐고 묻자 그는 영어로 '아니오'라고 답했다. 기자는 "북한의 경제제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재차 물었다. 기자는 "휴가 중이냐"고 묻자 "아니다"라고 답했다. 기자는 그에게 만다린 호텔에 머물고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이번에는 "노코멘트. 이건 내 사생활이다"라고 답한 뒤 택시를 타고 떠났다.
그러나 한국 조선일보에 따르면 2007년 2월 11일 베이징에 도착한 김정남은 아버지와 자주 만난다며 웃으며 일본 후지TV와의 인터뷰를 수락했다. : "우리는 자주 만난다. 북한에서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2007년 2월 12일 한 언론기자는 그가 야구모자와 청바지를 입고 베이징 루프트한자 센터의 켐핀스키 호텔에 체크인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리고 배낭을 메고. 우연히 그를 발견한 기자들이 곧바로 현재 진행 중인 6자회담에 대해 묻자 그는 한국어로 “사적인 일로 왔다”고 답했다. 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평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언젠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물려받을 생각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해줄 말이 없다"고 답했다.
북한 소식통은 김정남의 차분한 행동에 대해 "베이징에 올 때마다 곤륜호텔이나 켐핀스키 호텔에 묵는다"며 "이 두 호텔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 씩씩한 성격으로 혼자 여행을 자주 다니는 그는 베이징에 3~4일 머물며 주로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거나 호텔방에서 휴식을 취한다. ”
2007년 8월 27일 조선일보 안용현 기자의 보도에 따르면, 귀국한 김정남은 노동청 조직지도부에 근무하고 있다. 당 조직지도부는 김정일이 후계자로 처음 훈련받았을 때 근무했던 부서로 당과 군, 정부에 대한 인사권과 감독권을 갖고 있다. 노동당 중앙위원회 산하 부서들 중에는 김일성 주석의 이름이 공개되지 않았다고 한다. 위원장은 62세 때 32세 아들 김정일에게 직위를 맡겼다. 그의 전 '2인자' 동생인 김영주 조직지도부장.
김정남 관련 최신 동향.
노인은 매우 소심한 성격이다
김정일의 둘째 아들 김정철은 26세로 태어났다 1981년 9월 24일, 북한의 수도 평양은 “김정철은 매우 절제된 인물이다. 김정철의 절제된 스타일은 어머니의 핸들링 스타일과도 관련이 있다는 보도가 있다. 그의 어머니는 김정일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지만 늘 실용주의적이고 절제된 성격을 갖고 있어 사람들의 눈에 거의 띄지 않았다.
도이치벨레 라디오는 김정철이 당시 스위스 베른의 고등교육기관에서 공부했으며 당시 이름을 바꾸고 운전사의 아들이자 청소부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당시 스위스 사람들은 김정철의 '부모'가 왜 그토록 김정철을 존경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2006년 6월 한국 조선일보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김정철은 여자 친구들과 함께 유럽에 있다. 여행도 하고, 서양 가수들의 공연도 보고, 물건도 사고…” 한국과 미국 언론 모두 김정철이 스포츠와 예술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프로농구(NBA) 팬이자 컴퓨터 조작에 능숙한 인물이다.
김정철도 과거 1년에 한두 번씩 유럽을 여행했다는 게 소식통이다. 김정철이 현재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상을 맡고 있다고 보도했지만 남측에서는 이를 확인할 수 없다. -철은 졸업 후 북한선전부에서 일했다. 아버지 김정일이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일했던 곳이기도 하다. 올해 4월 취임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남조선의 한 잡지에서는 김정철이 미국 NBA농구에 푹 빠져 아버지에게 조국 옆에 농구장을 지어달라고 부탁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p>
김정은: 외부 세계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한 '작은 글꼴'
김정일의 셋째 아들 이름은 김정은이었다. 1985년생으로 외부 세계에서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자신을 '김정일의 요리사'라고 부르는 한 일본인은 자신의 책에서 "김정은은 외모, 체격 등 모든 면에서 아버지와 닮았다"고 썼다. ”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1970년대부터 북한에서 유명세를 떨쳤음에도 불구하고 1980년 노동당 6차 대회가 열릴 때까지 그의 후계자가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정일이 핵심 지도부의 자리에 오르는 데 20년 이상이 걸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후계자를 양성하는 데도 오랜 과정이 걸릴 것이다.
출처 : (대한민국) 조선일보 (2008-09-16)
기자는 15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신체 이상으로 수술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이날 “북한 언론 보도를 분석한 결과, 김정일은 아직까지 뇌혈관 질환을 앓고 있으며 회복 중이다. , 김정일이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 볼 때 김정일의 신체상태는 아직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어느 정도 회복하면 내부 동요를 막고 자신의 건강 상태를 외부에 알리기 위해 추석을 기회로 공개석상에 나설 수도 있다고 관측한 바 있다. 아직 살아있습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4일 “김정일이 혁명열사릉과 애국열사릉, 만경대 증조부모 묘소에 화환을 바쳤다”고 보도했다. 김정일은 혁명열사릉과 애국열사릉, 만경대 증조부모 묘소에 화환을 바쳤다”고 밝혔다. 혁명적 열사, 애국열사”라고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냈으나 김정일의 사진은 공개되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김정일이 오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63돌 기념식에 참석할지는 김정일의 건강상태를 재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