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닉 장의 "거울 속의 남자"를 어떻게 이해하시나요?

이 시는 허공에 떠 있지만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을 시입니다. 그해(1984년) 늦가을인가 초겨울 어느 날 저녁, 장마니가 새로 쓴 두 편의 시 '거울 속의 남자'와 '그가 누구인가'를 들고 우리 집에 열심히 찾아왔어요. 당시 그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시가 그의 초기 시의 걸작이 되어 그를 위대한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장마니는 스스로를 후난성 출신이라고 불렀습니다. 후난 사람들은 근대부터 강인하기로 유명했습니다. 그가 스스로를 후난 사람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에서 그의 강인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가 절친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강인해야 합니다, 세상에 강인함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언젠가 파운드 추모 영화(를 보면서 그는 "다시는 감상적인 시를 쓰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는 시를 사랑했고 자신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80년대는 모든 것을 덮는 이상이다"에서 그는 "당시 나는 젊고 오만해서 시를 써서 땅에 버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호남인에게는 가벼움과 강인함이라는 놀라운 긴장감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거울은 강함과 부드러움이라는 두 가지 힘 사이의 균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이지만, 자신의 시에 대해 이야기할 때 "황제"를 지우고 싶다고 말하는 이 후난인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시 전체가 "황제"라는 단어에 의해 완전히 변형됩니다. 장런민과 동시대 시인들은 대체로 가벼운 마음을 가진 것이 특징입니다.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정치, 문화적 환경 속에서 많은 시인들은 "밀도가 높고 무거운 존재를 건너기 위해" 더 가벼워질 수 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마닉은 자신의 가벼움을 이렇게 표현합니다."나는 특히 매우 감각적이고 매우 사려 깊은 시를 쓰고 싶다. 지친 명상은 죽음과 사색이 담긴 사과 주스와 같지만 언제나 사과입니다.